Quittung für die Präsidentin / Donnerstag, 14. 4. 2016 / General - Anzeiger


김동형, Martin Roy 씀

대통령을 향한 부메랑

인물 평론 남한 여당이 선거에서 지다


서울 남한의 박대통령은 선거에서 항상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 보수당 소속의 대통령은 항상 그녀의 당을 성공으로 이끌어왔다. 설문조사기관들 또한 그 반대를 예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엔 그러나 상황이 정 반대였다. 박대통령 옆에는 전체유권자에 대한 여론조사전문가가 아닌, 그녀의 지지자에 대한 여론조사전문가만 있었다. 박대통령이 속한 정당인 새누리당은 야당이 내분으로 분열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총선에서 제 2당에 그쳤다.

옛날에는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박대통령은 현재 시점으로 2년 정도 남은 앞으로의 임기 동안 레임덕에 시달리고 국회에 치일 것으로 추측된다. 혹은 반대로 그녀의 오랜 정치적 경험을 활용해 잘 헤쳐 나갈 수도 있다. 박대통령은 이미 아이였을 때 남한의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에서 살았던 적도 있다.

(사진)
박근혜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는 1961년에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맏딸인 박근혜는 그녀의 두 남매와 함께 남은 유년시절을 정치의 그늘 속에서 보냈고, 수준 있는 여학교를 다녔으며, 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어머니인 육영수가 살해된 이후로 그녀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기 전이었던 22살에 남한의 퍼스트 레이디를 맡아야 했다.

아버지 또한 1979년에 살해된 후에, 박대통령은 보통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고향인 대구에 있는 영남대학교 행정위원회와 새마음병원,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세운 육영재단에서 일했다.

18년 후인 1997년에 그녀는 정치계로 다시 돌아와 보수정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1998년에 그녀는 처음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대통령직을 향한 첫 시도는 2002년과 2007년에 경선에서 지면서 실패했다. 2011년에 그녀는 새누리당을 조직했고, 그로부터 1년 뒤 남한의 여자대통령으로 선택받았다.

줄곧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회복시키고자 노력했다. 2007년에도 그녀는 아버지의 독재를나라를 구하기 위한 혁명이었다고 표현했었다. 그 아버지의 발 밑에서 야당이 탄압받았는데도 말이다. 박근혜는 그러나 박정희가 집권하는 동안 남한경제가 엄청나게 발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2012년에 있었던 대선 직전에야 그녀는 아버지의 독재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많은 사람들은 박대통령을 차갑고 가까이 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박대통령의 지도 방식이 비타협적이고 미숙하다고 말한다. 정확히 2년 전에 벌어졌던 세월호의 침몰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매우 격하게 비판 받았다. 재임기간 내내 박대통령은 야당 뿐 아니라, 여당과도 싸웠다. 여태까지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법안들은 여전히 거의 없다.

작년에 당시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정부시행령을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률에 찬성했을 때, 박대통령은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했다해당 법률은 거부권을 써서 부결시켰다. 곧이어 그녀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시켜 유승민에게 원내대표에서 사퇴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써 출마했고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다음 번 국회에 야당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과 관련하여 박대통령은 타협에 응해야만 할 것이다. 국회위원들과 대화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들을 이겨야만 한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화와 협동과 화해를 그녀의 장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sich an die Macht putschen (=to take power by a military coup)
jn. in Marsch setzen
sich auf etw. mit Jm. einlas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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