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산책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뒷산을 통해 포도밭으로 나왔다. 밭에서 골목길로 내려와 집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그 중에 내가 택한 길은 항상 같았다. 단단한 콘크리트가 깔린 고른 산책길이다. 그 길이 나오기 전에 있는 길이 또 하나 있다. 사실 길인지 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잔디가 덮이지 않아 노란 흙이 팔뚝 길이 만한 폭으로 드러나 길인갑다 싶기는 한데, 경사는 너무 가파르고 중간부터는 풀이 듬성듬성 뒤덮이기 시작한다. 골목길로 길이 이어져 있는지는 포도나무 줄기와 지지대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저게 길일까 궁금하기는 한데, 막상 실험해볼 의욕은 없다. 그래서 항상 눈길만 두고 말 뿐이었다.

그 전날도 산책을 나섰다가 그 곳으로 발길을 들인 두 명을 봤다. 실제로 그곳을 통해 밭을 내려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반신은 땅에 가려진 채 상반신만 튀어나와 있는 것을 멀찍이서 잠깐 본 것 뿐이기 때문이다. 한참 뒤 다시 쳐다봤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로 내려갔을 수도 있고, 다시 올라와 다른 길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 둘의 상반신이 나에게 남긴 인상은 저것이 탄탄한 길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저기에 발을 들이는 사람도 있네.’하는 인식이었다.

다음 날 산책을 가서 다시 그 길을 마주했다. 어제 두 사람의 하반신이 이 아래로 사라지던 것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여기로 한 번 가볼까? 아무리 봐도 길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 괜히 내려가다가 미끄러져서 허리라도 삐끗하면? 안 그래도 지금 허리 많이 아픈데. 길 없으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잖아. 귀찮은데. 아니 잠깐, 도대체 왜 이런 시답지 않은 걸로 고민하고 있는 거야? 그냥 한 번 가보면 되지. 아니면 그냥 다시 올라오면 되지.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발을 내딛는다. 몇 발자국 걷자 굳지 않은 모래가 많아진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구를 것 같아 덜컥 겁이 난다. 뒤돌아보니 금방 다시 되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다시 돌아갈까? 머릿속에 불안을 품은 채로 또 몇 발자국 내딛는다. 중간에 길게 골이 파여 있고 낙엽이며 자갈이 가득하다. 잘못 디뎠다가는 어디 하나 다칠 것 같아 이제는 손까지 이용해 땅에 납작 붙어 내려간다. 이제는 다시 올라가기도 힘들다. 너무 멀리 왔다.

기어이 내려왔더니 이제는 아예 길이 없다. 에이, 결국 헛수고였나. 싶었는데 얼핏 저 아래로 다른 산책로의 난간이 보인다. 혹시 난간을 넘어 가면 산책로가 나오지 않을까? 저기까지는 길지도 않은데. 그래,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만 더 속는 셈치고 가보자. 다시 내려간다. 여태까지보다 더 가파르기는 하지만 촉촉한 잡초가 덥수룩해 미끄러지지 않고 훨씬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가보니 오른쪽으로 평탄한 길이 나있고 그 중간에 산책로로 통하는 돌계단이 있었다.

그 산책로로도 포도밭에 올라온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이런 돌계단이 있었는지도, 그 돌계단이 여기로 통하는지도 몰랐다. 용기를 냈고, 그 결과 새로운 길을 찾았다. 무엇보다 항상 가지고 있던 별거 아닌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했다. 앞으로 다른 길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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