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와 짧은 머리

긴 머리


머리 감을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감는 과정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말리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수는 상관없지만- 몸은 잘 안 씻게 된다. 몸 전체를 씻으면서 머리를 안 감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자연히 씻어도 머리만 따로 감지 몸을 씻는 일은 잘 없다. –애초에 나는 씻는 걸 어마어마하게 귀찮아 하는 사람이라는 걸 감안해주시길 바란다. 난 아직도 왜 씻겨주는 기계가 발명되지 않는지 이해 할 수 없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운동 후에 씻어야 하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면 운동이 가기 싫어진다. 운동을 가지 않으려는 변명 같지만 맹세코 아니다.

머리를 감은 뒤 말릴 때도 거추장스럽다. 머리숱이 많지도, 머리카락이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완전히 마를 때까지 세 시간은 걸린다. 드라이기를 쓰는 법도 잘 모르고 귀찮아서 대신 자연건조 시키기 때문이다. 다 마를 때까지는 머리를 묶지도 못 한다. 저녁에 감으려면 자기 몇 시간 전에 감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고, 조금이라도 늦게 감으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가 소위 떡지거나 머리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침에도 말리는 시간은 여전히 부담이다.

운동할 때나 여름에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이 올려 묶으면 세상 편하다. 다만 최고로 편하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의 길이가 상당히 길어야 한다. 길이가 어정쩡 할 때는 머리핀이 필요해 편리도가 낮아진다. 그럼에도 앞머리가 이마를 덮지도 않고 세수할 때도 머리끈 외에는 별다른 도구가 필요하지 않아 여전히 편리하다. 하지만 오래 묶고 있으면 두피가 심하게 아프다.

머리를 감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를 묶고 있다가 풀었을 때 확 풍기는 샴푸 냄새, 잠에서 깼을 때 베개에 퍼진 머리카락이 주는 아름다움, 아무 생각 없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 보면 찾아오는 안정감. 때로 긴 머리를 한 쪽으로 쓸어 넘긴 채로 샴푸 냄새나 머리카락 감촉을 느끼고 있자면 내가 엄청난 분위기 미인인 것 같은 느낌까지 한껏 느낄 수 있다. 거울 보기 전까지는.


짧은 머리 (여기서 말하는 짧은 머리는 남자들이 주로 많이 하는 투블럭컷을 말함)


머리 감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 언제든 어디서든 감을 수 있다. 감고 자연건조로 말리는데 까지 길어야 20분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몸도 자주 씻을 수 있다. 운동도 문제 없다. 수영도 매일 갈 수 있다.

겨울이나 늦은 밤 신변 보호에 탁월하다. 머리가 길면 여자, 머리가 짧으면 남자라는 이분법은 영 못마땅하지만 다른 요소와 머리카락의 길이가 합해졌을 때 통계상 성별을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내 키는 한국 남성 평균키를 웃도는데다가 체격도 왜소한 편이 전혀 아니다. 굽이 높은 신발은 일년에 두어 번 신을까 말까 하고 화장 또한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머리가 짧은 상태에서는 외투를 조금만 두껍게 입어도 남자로 보이기 쉽다. 남자로 보여야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사회가 정말 역겹지만, 어느 겨울 밤에 긴 패딩을 입고 골목길을 걷던 중 내 앞에 가던 아저씨 한 분이 연신 나를 흘긋대며 빠르게 걸어가던 때를 생각하면 큰 이점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위에 든 이점은 어쩔 때는 불편한 점이 되기도 한다. 밖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할 때 특히 그렇다. 여자화장실을 들어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이 너무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왜 놀라는지 혹은 겁을 먹는지 충분히 이해하기에 그럴 때마다 미안해진다. 다행히 상대방이 놀란 뒤 재빠르게 흉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오해가 오래 가는 일은 없다. 나도 같이 놀래면 상대방이 더 불안해 할 것 같아 몇 차례 이런 일을 겪은 뒤로는 오히려 당당하게 화장실을 들어가고는 한다.

생각보다 짧은 머리는 관리가 어렵다. 특히 내 머리카락은 곱슬머리에 뿌리가 붕 뜨는 유형이기 때문에 모양 잡기가 매우 힘들다. 왁스나 헤어드라이기 등으로 모양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추레해 보이기 쉽다.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관리를 하자니 시간이 많이 든다. 일일이 관리해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파마를 하자니 돈도 너무 많이 들고 해도 관리를 해줘야 한다. 게다가 짧은 머리일수록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전체모양이 망가지기 때문에 자주 잘라줘야 한다. 자연히 돈도 많이 든다. 여담이지만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을 가면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책정해 놓은 가격표인지 모르겠지만- 비싼 돈을 주고 여자머리로 잘라야 하는지 아니면 남자머리로 잘라도 되는지를 가지고 미용사와 가벼운 승강이를 한 적도 많다.


세수 할 때도 불편하다. 머리카락이 길 때와는 다르게 머리끈 말고 다른 준비물이 필요하다. 앞머리가 이마를 가려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수 머리띠로 머리를 젖히고 세수를 하고 나면 머리카락에 자국이 남고 모양이 이상하게 변한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짧아 머리를 감지 않고는 다시 제대로 모양을 잡기가 힘들다. 머리가 길 때와는 다르게 아이롱 같은 도구를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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